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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6이사야64:1-12
     최금숙   | 2018·05·16 07:08 | HIT : 10 | VOTE : 1 |
주의 손으로 지었나이다  

64장은 문맥의 내용상 63장의 연장입니다. 63:19절은 어려운 현실에 대하여 입을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64;1절은 그러므로 "원하건대...“라며 하나님의 간섭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시내산에 주께서 임하실 때처럼 능력으로 임하셔서 원수를 물리치시고 구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바로의 노역에 못 이겨 구원을 요청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상상도 활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하셨습니다.(3절) 그런 일을 어디서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행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누더기이며 나뭇잎처럼 시들어지고 바람에 낙엽처럼 날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6절) 지금 주님을 애타게 찾아야 하는 시간인데.. 누더기를 걸치고 웃고 있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기에 얼굴을 숨기신 것입니다.(7절)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 원망하는  말들이 많으나 자기를 돌아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나를 만드신 분이시니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8절) 우리의 존재는 토기장이의 의견에 달려 있습니다.(롬9:20-22) 작품은 복제할 수 없으며 복제되는 순간 작품이 아닙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작품을 흉내 내도 그것은 위작(僞作)입니다. 작가의 작품에 뭔가 흠집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작가의 새로운 시도이며 포인트(point)입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남기신 상처 자국들은 주님이 주신 또 하나의 흔적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아픈 일들을 통하여 나를 만들어 가고 계신 주님을 손길을 느끼신다면 결코 슬퍼할 일을 아닙니다.

가치는 그릇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만드신 분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다 깨어졌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계획대로 쓰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와서 한 덩이의 진흙과 같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잘난 것을 드러내 놓고 살 때에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이 한 덩이의 진흙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제 비로소 하나님이 손을 대실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토기장이는 깨어진 그릇을 가지고 다시 만들지 못하나 하나님은 깨어진 것도 다시 반죽하여 새로운 그릇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주안에 있고 지금도 만들어 가시는 작품이기에 내가 소중한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부서지고 황량한 광야가 되었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곳이 불에 탔습니다(10-11절) 이 땅의 교회가 아직은 황폐하고 황무한 광야는 아닙니다. 그러나 황폐의 징조는 여기저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영적인 사막화가 시작되었다는 위기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더 메마르면 안됩니다. 세상은 교회를 통하여 희망을 보기를 원하고 빛을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5절) 이제 하늘을 가르는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한 때입니다. 부흥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의 불이 임하여 교회마다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일으키시는 부흥을 합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오늘도 주님과 함께
  
       
  2018.05.17이사야65:1-1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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