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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이사야45:14-25
     최금숙   | 2018·04·17 06:39 | HIT : 132 | VOTE : 15 |
숨어계신 하나님  

유다 백성은 절망하여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탄식하고 있을 때에 홀연히 이사야는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합니다.(15절)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불같이 일어나 행동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뒷짐 지고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던 것으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라고합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눈을 가지고 보이지 않으나 계시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건안에 숨으시고 자연안에 숨으시기 때문에 믿음의 눈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거룩한 역사를 은밀히 이루게 하시니 누가 하나님이신 줄을 알겠는가? 하나님이 숨어 계신다는 표현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그래서 다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셨으나 어느날 갑자기 그 일을 눈 앞에서 이루셨습니다.

욥이 고백하기를  “그러나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하였습니다.(욥 23:8∼9)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숨어계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숨어계시는 기간은 우리 믿음이 자라는 기간입니다. 고난은 때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위치를 살짝 알려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숨어계시면서 오히려 우리를 더 자세히 관찰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겁이 많아 숨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 자세히 관찰하시기 위해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기 위해 숨어 계시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도우시기 위해 숨어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셨습니다. 누구도 예수님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숨어계신 하나님’과 ‘십자가의 신학’을 하나로 연결하였습니다. 루터는 한 번도 이 ‘숨어계신 하나님'을 철학적 존재론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루터는 그 초라하고, 연약하고, 십자가에 달려 스스로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통해 '숨어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루터는 이것을 '이 세상의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감춰진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숨어계신 분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 땅의 어디서든지 예수님에 대하여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부재의 시대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공과 승리로 하나님의 임재를 결코 드러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제자로서 종의 고난을 감당할 때 비로서 주님을 드러내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이 시대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밝히 보여주는 증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여호와의 종입니다..

신석장로교회 박 근 상목사
오늘도 주님과 함께
  
       
  2018.04.18이사야46:1-7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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