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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3고린도후서7:2-7
     최금숙   | 2018·03·13 07:17 | HIT : 126 | VOTE : 10 |
그대가 내안에 있습니다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1절)  '영접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레사테'는 장소를 나타내는 '코로스'에서 파생된 말로 “...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다”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영접하는' 것은 상대를 위해 마음에 장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마음의 방을 만들어 달라" “나를 위한 장소를 준비해달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바울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갈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10여 년 전 ‘파리의 연인’이라는 인기 드라마에서 ‘내안에 너가 있다’라는 짤막한 대사를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나의 마음 안에 너희 고린도 교회가 있기에,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상하게 하고, 억울하게 만들어도 너희들 없이는 난 못 살겠다”라고 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날 수 있겠으나 끝까지 고린도 교회를 놓지 않겠다,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정말 힘든 것은 물질의 부족이 아닌, 솔직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터놓고 마음과 마음을 함께 할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받아주시오 당신의 마음의 방을 만들어 주시오”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권을 이용하여 누구위에 군림하거나 독선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누구를 타락시킨 일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주의 일을 빙자하여 사적인 이익을 챙긴 일이 없습니다. 누구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하거나 빼앗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오직 바른 동기로 일하였습니다. 서로가 투명하고 숨기는 것이 없으면 담대해집니다. 진리는 단순하지만 강합니다.(1.2절)

바울은 마음속 깊이 고린도 성도들과 연결이 되어 있었고, 오로지 성도들과 죽고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3절) 바울은 교회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역자들은 교회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에 종속 시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는 교회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도 아깝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과 교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공동 운명체였습니다. 좋은 일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힘들어 할지라도 다 함께 하고자 하는 소원뿐입니다.(살전2:3)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는 그의 생명이었고 더 이상 귀한 것은 없었기에 함께 살고 죽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담대한 것도 많다”는 말은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고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담대하게 교회를 향하여 말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4절) 비록 책망은 하였으나 교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서도 성도들이 자랑이 되기를 원했습니다(1:14) 디도가 고린도에서부터 가져온 소식을 들을 때에 숨통이 트이고 이제는 살 것 같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디도를 환대하여 주고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근심 덩어리가 다 녹았습니다. 특히 교인들이 바울 목사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들을 때에 바울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습니다.(7절)  교회와 가정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면 원인은 사랑입니다. 지금 그대의 모든 아픔을 한 번에 씻어 줄 수 있는 기쁜 소식은 과연 무엇입니까?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오늘도 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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