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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7고린도후서4:1-12
     최명훈    | 2018·03·09 17:17 | HIT : 204 | VOTE : 19 |
보배를 담은 질그릇

4장은  “그러므로”(Therefore)는 접속부사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앞에 말한 내용이 뒤에 말하는 사실의 원인 조건 근거가 됨을 나타낼 때에 사용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일꾼은 의의 직분을 받게 된 것이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합니다.(3:8-12) 그러므로 주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서 새 언약의 일꾼이 된 사람은 어떤 일을 겪든지 낙심하지 않습니다.(1절)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에 누구를 기만하거나 거짓으로 꾸미거나 혼잡하게 전하지 아니하고 오직 말씀만 전했기에 모든 사람을 향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습니다.(2절) 자기 연민에 빠져서 스스로를 처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영광스러운 직분, 사람을 살리는 직분을 맡았기에 조금도 양심에 꺼리기는 일이 없었기에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2절)

단맛으로 치면 꿀이나 설탕이나 비슷하지만 그러나 꿀에 설탕을 섞어서 단맛을 강하게 했다면 그것은 가짜 꿀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약에다 무엇인가를 섞으면 그것은 독약이 될 수가 있기에 순수한 복음만 전해야 합니다.(3절)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귀를 긁어주는 말이든지  뭔가를 섞어서 혼잡하게 만든다면 결국은 복음의 능력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지금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 사탄이 역사하여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복음을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4절)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영적전쟁인 이유는 먼저 강한 자(사탄)을 결박해야 사로 잡힌자를 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흙으로 지은 질그릇입니다. 금이 가고 깨어져서 나중에 쓸모없게 되는 것처럼 인간의 육체는 약합니다. 추위에 약하고 더위에 약하고 환경에 약합니다. 나의 가치는 질그릇 됨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안에 있는 보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배이신 주님을 담으니 그릇의 가치까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떨어져도 깨짐을 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큰 상처가 나더라도 아무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치유가 됩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가 주님 때문에 가장 존귀하고 강한 그릇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방에서 압박을 가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어도 마치 집어 던져진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보배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움츠러들지 아니하고 절망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결코 버리시지 않으시므로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8-9절)

지금 우리를 날마다 죽음과 직면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몸의 부활을 믿기에 그릇된 나를 스스로 깨뜨려 생명을 드러냅니다.10절)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제 나는 죽었다고 복장(復唱)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 때에 제일 힘든 것은 내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 때문입니다.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으려고 하니까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사망은 우리안에.....생명은 너희안에..” 이 말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죽음과 같은 고난을 받을지라도 복음을 들은 자들에게서 부활의 생명이 나타나고, 들은 자 안에서 생명이 자라난다는 말입니다(12절) 자 이제 보배가 내 안에 있으니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오늘도 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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