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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3고린도후서2:1-11
     최명훈    | 2018·03·05 18:53 | HIT : 205 | VOTE : 23 |
사랑하기에

바울이 고린도에 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 때문이 아니라 교인들을 아끼기 때문이었습니다.(1:23절) 가서 말을 할지라도 거부하는 사람들은 귀를 막고 듣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바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만 근심하고 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믿게 된 교인들이지만 그들을 주장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한 것을 바울이지만  믿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쓰임을 받은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을 섬기고 기쁨을 더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오히려 바울 자신도 연약함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기에 성도들의 기도가 필요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로 도와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1:11)

고린도 교인들을 주관하려고 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11:20절 )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은밀히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서 자기들의 종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의 말에 맹목적으로 따르면서도 바울을 불신하고 배척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회개하지 않고 바울을 비방하고 다니는 사람에게 단숨에 달려가서 고쳐 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받으면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에 더 기다려 보고자 했습니다.(1절) 바울은 역설적으로 말하기를 바울의 책망을 듣고 슬퍼하고 근심할 사람들은 결국 바울을 사랑하고 바울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기에 그들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2절) 부모는 자식 때문에 슬퍼할 때도 있으나 철이 들면 언젠가는 기쁨이 되는 자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에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그 마음이 바로 목회자의 마음이기도 합니다.(3절)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근심케 한 자) 들은 교회공동체에 모두에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아니하고, 화나게 한 사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슬프게 한자라고만 하고 있습니다.(5절) 이제는 용서하고 받아들이라고 합니다.(6절) 징계의 목적이란 그를 쓰러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고 다시 설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용서하고 위로하라”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7.8절)고 합니다. 사단은 늘 참소하는 자입니다. 사단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고, 작은 것도 부풀려서 참소합니다. 이 사단의 궤계를 이기는 것은 바로 용서와 사랑의 위력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은 나 자신도 악의 도구가 되는 것이고, 공동체를 깨뜨리려는 사단의 술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미움의 틈으로 스며들어 공동체를 깨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탄에게 속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주어야 합니다.(11절)

신석장로교회  박 근 상  목사
오늘도 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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